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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  2007-06-0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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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노보-170호] 공채 16기 ”탈 수습 신고합니다”

김경택

내겐 너무 가혹한 뻗치기

6월 11일 수습 딱지를 떼고 기자가 된다.
여섯달 엄한 교육이었다. 한 선배는 ‘팩트’를 찾는 연습 과정이라고 했다. 또 기자의 힘은 사실을 쓰는 것에서 나온다고 했다. 자기소개서에 쓴 말이 생각났다. “현상 뒤에 감춰진 진실을 쓰는 기자가 되겠다”고.
기자실에서 경찰서 지능팀에 전화를 걸어 취재하다 선배에게 들통난 일이 있었다. 서럽게 혼났다. 왜 혼나는 지 잘 몰랐다. 현장에 가지 않는 기자는 기자가 아니라는 말만 머릿속에 남았다. 다음부터 조건반응처럼 무조건 현장으로 뛰어나갔다.
각종 ‘뻗치기’가 기억에 남는다. 10여명이 넘는 기자들 사이에서 따로 보고할 것을 찾기 어려웠다. 그러다 중요한 것들을 잡을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수첩에 기록해두지 못해 또 혼났다. 긴장을 푸는 순간 중요한 사실을 놓쳤다.
선배들과 대면식을 할 때마다 혼쭐이 났다. ‘현상’은 무엇이며 ‘진실’은 또 무슨 말이냐는 질문에 대답을 못했다. 직접 보고 들은 것이 진실에 가깝다는 확신은 선다. 체험한 것들 중에서 ‘진짜’를 가리는 숙제가 또 남았다.
△생년월일 77.5.6 △출신고교·대학 : 중앙고, 고려대 불어불문학과


김아진

눈물뽑은 6개월...끝나니 애틋

파란만장한 시간이었다. 천성이 드센 탓에 선배들에게 대드는 일이 잦아서 야단도 많이 맞았다. 혼자 눈물을 훔쳤던 일도 많았다. 일복을 타고 난 팔자인 지 가는 곳마다 사건이 많았다. ‘마포라인’에 있을 때는 연예인이 관련된 마약 사건을 취재하느라 진을 뺐고, 수습 막바지 ‘중부라인’에 배치됐을 때는 ‘김승연 보복폭행 사건’때문에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그만큼 알찬 시간이었고 보람도 많았다.
요즘 천안으로 내려가 홀로 고군분투하면서 무시로 캡을 비롯한 선배들 생각이 많이 난다. 시간에 쫓기고 사건에 치이면서도 어느 누구보다 빼어난 실력을 보여줬던 선배들이 대단하게 느껴지고 존경스럽다. 언젠가 들어올 후배들에게 내가 과연 존경받는 선배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아직 갈 길이 까마득한데 말이다.
사랑하는 동기들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동기들이 없었더라면 그 가혹했던 시간을 견뎌낼 수 없었을 것이다. 너무도 힘들었고 고생스러운 시간이었지만, 다시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니 마냥 애틋하게 느껴진다. 가까운 시일내에 가벼운 마음으로 선배들, 동기들과 술 한 잔 부딪히고 싶다.
△1982.10.31 △군산여고, 연세대 영문과


박지훈

전화벨에 경기 일으키던 나날

무려 반년이 지났다. 수습기자로 생활하며 겪었던 저간의 일들을 추억하면 우선 열없이 웃음이 난다. 항시 가슴속으로 육박해 들어왔던 긴장감에 허둥댔던 시간과 전화벨 소리에도 경기를 일으킬 만큼 예민해졌던 순간순간이 떠오른다. 힘들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지 못할 것이다. 경찰서를 전전하며, 거리를 뛰어다니며 만났던 무수한 사람들은 나의 모자람을 깨닫게 해주었고 부끄러움을 가르쳐주었다. 애면글면 살아가는 세상의 밑바닥 사람들을 통해 느꼈던 망연한 기분을 나는 잊지 않을 것이다.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돼먹지 못한 언행을 일삼는 사람들을 통해 느꼈던 짜증과 슬픔도 잊지 않을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지난 6개월 동안 틈틈이 썼던 일기를 다시 읽어 보았다. 매사에 소극적인 내가 기자라는 직업과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주야장천 회의에 젖어 살았던 순간들이 일기장 켜켜이 쌓여있다. 앞으로 기자로 밥벌이를 하며 살아야 할 운명인 내게 주어진 숙제인 셈이다.
끝으로 수습생활 동안 내게 더할 나위없는 힘이 돼줬던 동기들과 선배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이제나저제나 기다렸던 여름이 드디어 왔다.
△1981.2.27 △대아고, 단국대 국어국문학과


이도경

이제야 기자된 기분이...

“너 눈빛이 변했구나” 경찰서를 돈지 4개월쯤 되던 어느 주말에 대학 선배가 한 말이다. 선입견을 가지고 보기 때문이라고 대수롭지 않은 듯 대꾸했지만 집에 가서 거울을 볼 수 밖에 없었다. 거울을 보면서 찬찬히 살펴보니까 그 선배가 맞았음을 알 수 있었다. 눈빛뿐만 아니라 인상 자체가 변해 있었다. 예전의 내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수습 6개월은 내 인생을 둘로 나눌 때 기점으로 해도 될 만큼 강렬한 기억이었다. 인생에서 가장 바쁜 시간이면서 가장 졸리고 피곤한 시기였다. 그러면서 인생에서 가장 많은 사람과 만났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전화해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때로는 말다툼도 했었다. 22시간을 노동하기도 했었다. 지하철에서 거의 기절해 선배에게 꾸지람을 들은 적도 있었다.
택시 안에서건 경찰서 벤치건 엉덩이만 붙이면 잠을 잤다. 이 과정에서 독기, 오기같은 것이 생겨났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독기와 오기가 눈빛으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건 아닌지 생각한다.
수습은 끝나지만 기자생활은 시작이다. 수습 때 몸에 익힌 이런 것들이 앞으로 많이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 변화를 가능하게 해준 선배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77.3.29 △인천 송도고, 동국대 신문방송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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